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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행, 재난영화 그 이상 – 지금 시대에 더 와닿는 이유

by 오가닉그로스 2025. 5.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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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행 포스터

2016년 개봉한 연상호 감독의 영화 『부산행』은 좀비 영화라는 장르의 외피를 쓰고 있지만, 그 안에는 깊은 사회적 통찰과 인간 본성에 대한 질문이 담겨 있습니다. 이 영화는 단순한 스릴과 공포를 넘어서, 한국 사회의 집단심리와 구조적 문제를 날카롭게 비추며, 지금 시대에도 여전히 강력한 메시지를 전하는 작품으로 자리매김하고 있습니다. 특히 팬데믹을 겪은 전 세계 관객에게는 더욱 생생하게 와닿는 영화가 되었습니다.

좀비보다 더 무서운 건 인간 – 부산행의 사회적 메시지

‘부산행’의 가장 큰 미덕은 좀비라는 익숙한 소재를 통해 인간의 이기심과 공동체 붕괴를 효과적으로 보여준다는 데 있습니다. 영화는 바이러스 확산이라는 외부 위협이 아닌, 그 속에서 드러나는 인간의 민낯에 초점을 맞춥니다. 위기의 순간, 인간은 얼마나 쉽게 자신과 타인을 구분짓고, 얼마나 신속하게 타인을 배제할 수 있는지를 이 영화는 잔인하리만큼 솔직하게 그립니다.

용석(김의성)은 타인을 위험 요소로 간주하고 열차 문을 막아 생존하려 합니다. 이기적이고 비겁한 그의 행동은 당시 관객들로부터 분노를 샀지만, 동시에 많은 이들에게 반성과 찔림을 안겼습니다. 그와 같은 인물은 극적인 장치가 아니라, 우리 사회 어디에나 존재하는 보통 사람의 또 다른 얼굴일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에 반해 석우(공유)는 점점 변화하는 인물입니다. 처음에는 자신의 이익을 우선시하지만, 아버지로서, 인간으로서 조금씩 책임을 지기 시작합니다. 그의 최후는 단지 감정적 클라이맥스가 아니라, “공동체를 위해 자신을 희생할 수 있는 인간은 누구인가”라는 질문에 대한 대답입니다. 이처럼 ‘부산행’은 극한의 상황에서 인간의 윤리를 묻습니다.

기차라는 폐쇄된 공간 – 한국 사회의 축소판

이 영화가 특별한 이유 중 하나는 배경으로 설정된 ‘기차’라는 공간입니다. KTX는 서울에서 부산까지 이어지는 고속 열차로, 한국 사회를 상징적으로 대변할 수 있는 장소입니다. 각 칸은 하나의 집단이며, 앞칸과 뒷칸 사이의 물리적 경계는 곧 계급, 정보, 안전의 단절을 의미합니다.

기차 안에서 벌어지는 인물들의 행동은 놀라울 정도로 현실적입니다. 감염 여부가 불확실한 사람들을 밀어내고, 안에 있던 사람들은 그 결정을 동조하며 묵인합니다. 이는 실제 사회에서 위기가 닥쳤을 때 보였던 집단 배제, 편견, 차별적 시선과 닮아 있습니다. 마치 사회 실험을 보는 듯한 이 장면들은 영화적 장치 이상의 불편한 진실을 드러냅니다.

더불어, 종착지 ‘부산’은 안전한 목적지처럼 보이지만, 실제로 도착한 이들에게는 또 다른 불안과 검문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어디에도 완전한 안식처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부산행’은 관객에게 진정한 생존의 의미를 다시 생각하게 만듭니다. 이 영화는 끝내 ‘살아남는 것’이 과연 무엇을 의미하는가에 대해 질문을 던지며 마무리됩니다.

장르를 넘어선 감정의 울림 – 부산행이 시대를 초월하는 이유

연상호 감독은 ‘좀비’라는 장르적 틀을 빌려 인간과 사회, 윤리를 이야기하는 데 능한 연출자입니다. 애니메이션 『돼지의 왕』과 『사이비』를 통해 드러났던 그의 시선은 『부산행』에서도 유효하게 작동합니다. 그는 단순히 사람들을 괴롭히는 괴물이 아니라, 괴물보다 더 두려운 인간을 카메라에 담습니다.

특히 각 인물들의 사연과 죽음은 그 자체로 깊은 울림을 줍니다. 마동석이 연기한 상화는 전형적인 남성 영웅과는 다른 방식으로 가족을 보호합니다. 화려한 무기도, 전략도 없이 맨몸으로 싸우며 인간의 본성을 드러냅니다. 그의 희생은 관객에게 단순한 액션 이상의 감정적 공감을 이끌어냅니다.

또한 최우식과 안소희가 연기한 고등학생 커플, 정유미와 마동석의 부부, 그리고 말없이 서로를 챙기는 노부부까지, 다양한 세대와 관계가 하나의 공간에서 충돌하고 교차하는 구조는 현실의 축소판처럼 느껴집니다. 그들의 선택은 관객으로 하여금 감정의 깊이를 체험하게 합니다.

‘부산행’ 이후 – K-좀비 장르의 시작점

‘부산행’은 단지 하나의 영화로 끝나지 않았습니다. 이 작품은 한국형 좀비 장르의 시작점이자, 세계 시장에서 K-콘텐츠의 위력을 알리는 신호탄이었습니다. 이후 제작된 『반도』, 넷플릭스 드라마 『킹덤』, 『지금 우리 학교는』 등은 모두 ‘부산행’의 유산 위에 세워졌습니다.

하지만 단순히 흥행성과 외형만이 아닌, ‘부산행’이 남긴 진짜 의미는 장르를 빌려 현실을 말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증명했다는 데 있습니다. 장르 영화는 엔터테인먼트의 도구이자, 사회 비판의 도구로도 기능할 수 있습니다. ‘부산행’은 그 경계를 성공적으로 넘나들며 대중성과 작품성을 동시에 확보한 보기 드문 사례입니다.

전 세계적으로 팬데믹을 겪은 이후, 많은 관객들이 이 영화를 다시 꺼내 본 이유는 명확합니다. 영화 속 장면들이 더 이상 허구처럼 느껴지지 않기 때문입니다. 감염, 격리, 공포, 배제, 그리고 이기심과 연대. 이 모든 것은 우리가 실시간으로 경험했던 현실 그 자체였습니다.

결론

『부산행』은 단순한 좀비 영화가 아닙니다. 그것은 인간의 선택과 윤리, 공동체의 의미를 되짚는 사회적 리트머스지이며, 재난이라는 비상 상황 속에서도 인간으로서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묻는 작품입니다. 연상호 감독은 ‘공포’보다 ‘공감’을, ‘액션’보다 ‘사람’을 먼저 바라보며 이야기를 구성했습니다.

지금의 우리는 다시 ‘부산행’을 보며 자신에게 물어야 합니다. 나는 위기 상황에서 어떻게 행동할 것인가? 내 선택은 누구를 살릴 수 있을까? 그리고 나는 과연, 인간다운 선택을 할 수 있을까?

바로 그 질문을 던질 수 있는 지금, 『부산행』은 다시 봐야 할, 그리고 반드시 이야기되어야 할 영화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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